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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스의 책 이야기

[요약서, 독후감] 플라톤 국가

by ♥♥# 2018. 9. 25.






<내용 요약>


소크라테스와 케팔로스와의 대화로 이야기가가 시작된다.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의 중에 정의란 빌린 것의 갚음이다.라는 의견이 나온다. 폴레마르코스는 정의란 남에게 빌린 것은 반드시 돌려 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친구에게 이익을 주고 적에겐 해로움을 입히는 것이 정의다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친구든, 적이든 정의로운자가 할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트라시마코스와의 대화에서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진정한 의미의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지 않고 국민들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지시하는 것이 통치자이다.라고 반론한다.  

 

이에 대해 트라시마코스는 의로운 자는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언제나 손해를 본다. 부정은 정의보다 훨씬 강한 힘과 자유, 권력을 가진다.’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양치기들은 양들에게 좋은 먹이를 주는 것이 당장의 베품, 호의로 볼 수 있으나 결국에는 양들에게는 큰 손해로 다가온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양을 치는 기술과, 보수를 얻는 기술은 같다고 할 수 없고, 의사가 상대방을 건강하게 하는 의술과 그로 인해 보수를 얻는 기술은 같지 않다. 같다면 상대방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보수를 얻는 기술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니다. 어떤 기술이나 지배도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을 가져다 주진 않고, 강자의 이익이 아니라. 피지배자의 이익이 되는 것을 가져다 주고, 또 명령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뜻으로 지배하거나 남의 불행을 바로잡아주려고 나서진 않는다. 오히려 기술을 옳게 실행하려 하고, 그의 기술에 따라서 명령하고 있는 사람은 결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피지배자를 위해서 가장 좋은 일을 실행하고 명령하기 때문에 지배자로서 보수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지배하기를 승낙하려는 사람에게는 돈이며 명예를 보수로 주어야 하고, 지배하기를 거절하면 벌을 준다든지 하는 일이 있게 된다라고 이야기 한다. 결론적으로 소크라테스는 모든 기술은 각자의 영역을 가지며 각각의 대상에 이득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통치자는 통치하는 대상에 이득을 주어야한다.라고 반론한다.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는 ‘숭고한 단순함’이고 불의는 ‘재기 넘치는판단’이다.라고 주장하고, 소크라테스는 정의로운 사람은 현명하고 지혜로우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무지하고 열등하다. 정의가 불의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으며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정의로운 삶이 더 이익이다.라고 반론한다. 결론적인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결론적으로 정의는 덕이요, 지혜요, 행복을 가져다주고 유리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글라우콘은 사람들은 정의는 어떤 것이며, 어디서 생긴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모든 사람은 억지로 그렇게 하고 있는데,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것이 좋은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과 그런 행위는 그럴만 하다. 결론적으로 정의가 부정보다 낫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소크라테스에게 질문했다. 예를 들어, 의로운 사람과 부정한 사람 둘 다 무엇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을 때 그들의 욕망은 의로운 사람이나 부정한 사람 둘 다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글라우콘의 형인 아데이만토스는  정의롭게 살라고 하는 것은 정의 자체를 찬양해서라기보다는 그것이 가져오는 명성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질문을 통해서 소크라테스는 ‘정의 무엇인지 밝히자고 한다. 정의는 개인의 것도 있겠지만, 나라 전체의 것도 있겠으니, 큰 규모의 것에서 이를 찾는 게 더 쉽겠다며, 나라를 정의한다. 성향에 따른 분업을 효용성 때문에 생기게 된 공동체인 나라는 '최소 한도의 나라'에서 시작하여 '호사스런 나라'로 확대되어 감으로써, 수많은 직업을 갖는 사람살게 되고, 영토 확장의 필수적이며, 이는 결국 같은 현상을 겪는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게 될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를 해야 한다. 따라서 국가를 지키고 다스릴 방위자들이 필요하게 된다. 방위자들은 기백이 있고, 온순해야 한다. 이들이 해내야 은 다른 사람들이 맡을 일보다도 더 중요하 더 전문성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적합한 성향의 아이들을 선발해서 교육하는 일이 중요하다. 먼저 해야하는 교육은 예술, 체육 그리고 이야기’의 교육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순진 무구한 시기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교육은 그 내용이 바람직한 것이어야 다. 그래서 시가의 내용이 되는 설화에 등장하는 신들에 관한 묘사에 있어서 시인들이 지켜야 할 규범에 관한 언급을 하게 된다. 

 

 

이어서 어린이들 교육에 대한 논의를 지속한다. 먼저 노래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과 배제할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용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방식은 이야깃속 훌륭한 사람의 말투나 행동은 그대로 모방되어야 하고, 연약하고 두려운 면모를 나타내는 부분에서는 소극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그대로 모방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바른 내용과 올바르지 않은 내용을 선별해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노래와 서정시가의 진행방식에 관련해서는 알맞은 노랫말과 리듬이 과연 어떤 것인지 토의한다. 마지막으로 시가 교육과 체육 교육을 통해 혼과 육신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고 이렇게 조화를 이룬 훌륭한 사람들 중에서 최선의 사람을 선발하여 국가를 통치하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통치자들은 사유재산을 갖지 않고, 필요한 만큼의 보수만 받고 소박한 공동 생활을 해야 한다. 

 

아데이만토스는 그렇다면 방위자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사유재산도 갖지 못하고, 제물도 바치지 못하며, 손님 대접도 못하는 등 자신을 위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국가는 어느 한 사람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니다. 모두가 잘 살고 행복하게 하자는 것이다. 전 국민이 행복하도록 국가를 이끌어가기 위해선 어쩔수 없다. 법률과 국가의 수호자들이 타락하면 국가는 결국 망한다. 건전한 교육과 양육을 통해 법과 제도가 정비되고 다시 좋은 교육과 양육으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국가의 목표는 국가 전체의 최대 행복이다. 방위자들은 국가 전체 기반이 다져질 때에 각 계급에 맞는 행복의 추구를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성향에 따라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모두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은 노동자들을 타락시키므로 근절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국가의 규율 속에서 좋은 교육과 양육 체계를 유지하는 일이다. 좋은 교육은 좋은 사람을 키우고, 좋은 양육 체계는 더 좋은 자녀를 낳는다. 따라서 국가는 자잘한 입법을 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스스로 선을 행하게 된다. 

 

그리고 국가와 개인의 4주덕을 이야기 한다. 국가의 4주덕으로는 지혜’, ‘용기’, ‘절제’, ‘정의이다.지혜방위자들의 지식이다. 나라를 위한 뛰어난 판단력을 뜻한다.용기는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방위하는 군대에서 복무하는 자들에 대한 덕목이다.절제는 일종의 합음이라든가 조화같은 것이다. 국가에서나 개인에서나 본성에 있어서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 중의 어느 것이 지배하지 않으면 안되는가에 관한 합주가 곧 절제이다. 마지막으로 정의는 지금까지 논의했던 국가가 준수해야 했던 원칙이다. 나라에서 각자 자기 적성에 가장 잘 맞는 한 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며 남의 일 참견하지 않는 것이다. 이로써 국가는 제 구실을 하게 되며, 이를 어길 시에 국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므로 불의가 된다. 

 

개인의 4주덕을 이야기 할 때는 이성, 기개, 욕구, 정의를 이야기 한다. 이성, 기개, 욕구는 개인의 안에 있는 것들이다.이성은 혼을 지배하는 게 적합한 지혜를 가졌고, 기개는 이성적인 부분에 복종하고 협력하는 용기를 가졌다. 그리고 이것들의 우호와 화합의 결과를 절제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면 개인의 정의와 국가의 정의는 같다. 각 부분이 수행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할 때를 개인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힘의 세기를 제외한 자연의 천성은 남녀 간에 동일하므로 남자의 직업을 여자도 가질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것과 관련해서 남녀는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남녀간의 공유의 문제는 공동 관여의 문제가 되어 교육과 나라의 방위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고 결혼을 신성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신성한 결혼은 가장 유익한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뛰어난 남자는 뛰어난 여자와 맺어지는 일이 가장 잦아야하고, 미천한 남자와 미천한 여자가 맺어지는 것은 가장 드물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일은 통치자 밖에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해야 한다. 그리고 을 갖는 아름다운 나라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통치권과 참된 지혜가 통합된 진정한 의미의 철학자에 의해 실현 가능하다.철학자들은 모든 종류의 지혜를 가리지 않고 욕구하는 사람이고, 진리를 구경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바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철학자는 불변의 것을 파악하며 지혜를 사랑한다. 철학자의 자질은 존재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길 좋아하는 사람이고 허위보다는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진리와 지혜를 갖춘 자가 통치자가 되어야하므로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야만 이상 국가를 실현할 수 있다.  


아데이만토스는 현실에서 철학자는 쓸모없는 사람들로 취급되고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철학자를 운용하는 사회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 철학자가 될만한 소질이 있는 자는 환경적 어려움이 크기 때문에 철학자로 거듭나기 힘들다.라고 이야기 한다. 철학을 무익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철학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그래서 철학적 자질을 갖추지도 못한 사람들이 가짜 명성을 얻기 위해 철학을 해서 철학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철학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더욱 나빠진다. 하지만 나라를 훌륭하게 경영할 지도자를 얻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며, 선의 이데아를 가르치는 교육과 같은 제도적인 노력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 

 

 

인식되는 영역에서 보게 되는 선의 이데아는 고심해야 겨우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는 모든 아름다움의 원인이다. 이성적으로 행동하려는 자라면 이 이데아를 보아야한다.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란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영혼으로 하여금 밝은 부분을 볼 수 있도록 관조하면서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선을 찾아 터득하는 첩경이라고 말한다. 이상 국가란 어느 한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국가 전체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모든 국민을 결속시켜 공공의 선에 이바지 하도록 함으로써 각자가 잘 살도록 하는 곳이다. 이상 국가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지식이 깊은 방위자와 통치자가 있어야한다. 방위자는 어릴 적부터 학문에 대한 훈련을 시켜야 하나 억지로 교육시켜선 안 되고 체육훈련이 끝나는 스무 살 즈음부터 전쟁터로 끌고 가 위험에 대한 내성을 키워야한다. 또한 변증론을 5년 정도 배워야 한다. 마지막엔 어떤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확고히 지키는지를 시험받도록 해야 한다. 이 기간은 15년 정도로 잡는다.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선한 부분이 악한 부분에 지배받으면, 좋은 성질들은 질식하고 나쁜 성질들만 남아 그의 영혼을 잠식한다. 따라서 가장 비참한 사람은 참주이다. 사람들은 지혜를 사랑하는 자, 명예를 사랑하는 자, 돈을 사랑하는 자로 나눌 수 있는데 경험과 식견, 추론에 의해 지혜를 사랑하는 자의 삶이 가장 즐겁다고 말 할 수 있다. 지혜는 순수한 쾌락이다. 따라서 현명한 인간이라면 자신의 고귀한 목적을 위해 평생을 바칠 것이고 심신을 바로 닦고 야만성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재물을 취할 때도 분에 넘치지 않도록 주의하고 세상의 그릇된 것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늘 자신의 세계를 관조하며 무질서나 태만을 경계할 것이다. 현명한 자는 정치를 하지 않을 것이고 스스로 세운 상상 속의 이상 국가만을 통치하려고 할 것이다. 

  

 

무엇이든 그것 자체에 악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면 그로 인한 소멸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재돼 있는 영혼의 악이 영혼을 죽일 수 없다면, 그 영혼은 한결 같이 있어야 하고, 죽지 않는다. 불멸인 영혼은 순수하다. 소크라테스는 우리는 신의 뜻을 좇아 정의롭게 살면서 덕을 길러야 하고, 그것이 우리의 본분이며 신성을 느끼는 일이기도 하다.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감상평>


  플라톤의 고전은 예전에 군대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라는 적당히 얇은 책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 얇은 책 조차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더불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도 많았다. 이번에 읽은 '국가'라는 책도 마찬가지였다. 국가를 개인의 확장으로 바라보고 개인과 국가의 정의는 같으며 국가와 개인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처음부터 가질 수 있게 하는 책이었다. 책을 통해 많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당연시 생각했던 것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것이 정의이고 진리라고 받아들였던 것들이 소크라테스의 반론과 그 외의 사람들의 질문에서 와장창 깨져버렸다. 왜 의로운 사람이 부정한 사람보다 유리한지, 부정한 사람이 당장은 이익을 취하는 것 같아 보여도 그들의 끝은 어떤지를 보며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숙제거리를 주기도 하였다.


  대한민국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의 지배자들은 과연 '모두의 행복'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언행을 일삼고 있을까?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말한 선순환이 일어나기 위한 교육제도와 양육 체계는 바로 잡혀있는가? '방위자'로써 자라나야 할 아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하나도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국가'를 읽기 전까지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한 20대 청년이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된 지금은 문제를 발견했으니 해결방안을 생각하는 청년이 되었다.


  고전이 시사하는 바는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이 내용은 국가뿐만이 아니라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존재하는 조직들에게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이 모여 국가가 된 것 처럼, 개인이 모여 조직이 되고, 조직이 모여 국가가 되었다고도 생각한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이상국가'에 한 걸음 내딛으려면, '개인'이 정의롭고 의로워야 하고, '조직'이 정의롭고 의로워야 한다. 그렇기 위해선 우선 나부터 변화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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