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양혜왕 편>
양혜왕이 맹자에게 ‘영감께서 천리 길도 멀다 하지 않고 일부러 오셨으니, 아마도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여 주시겠지요?’라고 물었더니, 맹자는 ‘어찌 이로움만 내세우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입니다.’라고 답한다. 누구나 자신이 속한 무리의 이로움만 생각하고 좇게 된다면, 결국 나라는 위태로워 진다.
양혜왕이 연못가를 거닐다가 맹자에게 ‘현인들도 이러한 풍경을 좋아하는지!’ 라고 묻자, 맹자는 ‘어진 사람이면 이러한 풍경을 즐길줄 알지요, 하지만 현인들은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 했기에 진정으로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폭군들은 백성이 임금이 잘되길 바라지 않는데 자연이 있다한 들 어찌 그것을 혼자 즐길수 있을까요!’라고 답한다.
양혜왕이 ‘자신은 흉년이 든 지방에 곡식을 옮겨주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 살게 하는 등
나라를 다스림에 온 마음을 다해서 하는데 왜 자신의 백성들이 늘지 않습니까?’ 라고 묻자, 맹자는 ‘전쟁 때 오십 보를 도망치다 멈춘 사람과, 백 보를 도망치다 멈춘 사람은 도망간 것은 마찬가지이니 서로를 비웃을 수 없다.’ 라고 답한다.
이는 양혜왕의 정치가 이웃 나라의 폭압적인 정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풍년에 양식이 넘쳐나 개와 돼지가 사람이 먹을 양식을 먹는데도 거두어 저장해 둘 줄 모르고, 흉년에 양식이 부족해 길게 굶주려 죽은 시체가 있는데 창고의 곡식을 풀어 줄 모르다가, ‘나 때문이 아니다. 흉년이 들었기 때문이다.’한다면 이것은 사람을 찔러 죽이고도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칼이 죽였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격이라 하였다.
맹자가 ‘사람을 죽이는데 창대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왕이 ‘다를 것이 없다.’라고 답했다. ‘다시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이 다를 것이 있냐.’라고 물으니 왕은 ‘다를 것이 없다.’ 하였다. 이에 맹자는 ‘지금 왕의 주방에는 기름진 고기가 가득하고 마구간에는 살찐 망아지들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주려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많으니 이는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먹게 하는 것과 같다.’ 라고 하였다.
선왕이 종에 피를 바르는 의식을 위해 끌려가는 소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양으로 바꾸게 한 사건을 말하며 맹자는 이러한 마음이라면 천하의 왕이 되기에 충분하다 하였다. 실은 하지 않았던 것이지 못 해서가 아니라며, 짐승을 불쌍히 여기는 것처럼,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어진 마음을 베푼다면 천하의 사람들이 왕의 백성이 되고자 하려할 것이고, 백성들의 생업을 보장해주고 예의를 익히게 한다면 백성들이 따르기 쉽게 될 것이라 하였다.
음악을 좋아하는 제나라 왕에게 맹자가 말하기를 “왕이 음악을 매우 좋아하면 제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이라 하였다. 그 이유는 음악은 혼자 즐길 때 보다 많은 사람과 함께 즐길 때 더 즐거우니 왕이 백성들과 즐거움을 같이하면 나라가 잘 다스려 질 것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제선왕이 자신의 사냥터는 문왕의 사냥터보다 작은데도 백성들이 크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맹자는 ‘문왕은 그 사냥터에 백성들이 들어가 뛰놀게 하였지만, 선왕은 그 사냥터를 자신의 것으로만 삼았기에 이에 백성들이 불편을 토로하는 것’이라 답하였다.
제나라 선왕이 외교의 방법에 대해 묻자. 맹자는 어진 사람만이 대국으로서 소국을 섬길 수 있고, 지혜로운 사람만이 소국으로서 대국을 섬길 수 있다고 하였다. 대국의 통치자임에도 소국을 섬기는 자는 하늘의 이치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소국의 통치자로서 대국을 섬기는 자는 하늘의 이치를 경외하는 사람이다.
선왕이 왕도정치에 대해 묻자. 맹자가 ‘홀아비, 과부, 무의탁자, 고아. 이 네 부류의 사람은 천하에서 곤궁한 백성들로서 어디에도 호소 할 데가 없는 이들이다. 문왕은 정사를 펴서 어진마음을 베풀 때 이 네 부류의 사람을 가장 먼저 배려했다.’ 하니 선왕이 ‘참으로 훌륭한 말씀이지만 자신은 재물과 계집을 좋아하는 못된 버릇이 있어 실행하지 못한다.’하니 맹자는 옛 시 구절들을 예로 들며 ‘백성들과 함께 그것을 즐기면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맹자가 선왕에게 신하 중에 맡긴 바를 다하지 못하는 신하를 어찌 할 것이냐 물으니, 그러한 친구와는 절교를 하고, 그러한 백성은 파면시킬 것 이라 했다. 이에 맹자가 “나라 안이 잘 다스려지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왕은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선왕이 ‘어떻게 인재를 등용할 때 그들의 무능한 것을 알고 쓰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요?’라고 묻자, 맹자는 ‘곁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듣고 있지 않다가,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에 대해 칭찬을 하던, 질책을 한다면 그 때 알아본 후 등용하면 된다.’고 답한다.
<공손추 편>
어진 왕이 나타나 어진 정치를 펴지 않은 적이 요즘처럼 오래된 적이 없었고, 백성들이 포악한 정치에 시달리는 것이 요즘처럼 심한 적이 없었다. 주린 사람은 먹는 음식에 까탈스럽지 않고 목마른 사람은 마실 물에 까탈스럽지 않다.이러한 때에 제나라 같은 만승의 경제력을 지닌 큰 나라가 어진 정치를 행하면 백성들을 기뻐할 것이다.
맹자 왈, ‘세력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면 진심으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면 마음속에 우러난 기쁨에 겨워 성심으로 복장하게 되는 것이니, 제자가 공자에게 복종하는 따위가 곧 그것이다. 인을 실천하면 번영하고 인을 실천하지 않으면 욕을 본다. 이제 욕받기를 싫어하면서 인(仁) 아닌 짓을 하는 이는 진구렁을 싫어하면서 보숭보숭한 맨바닥에 앉으려는 것과 같다.’
맹자 왈,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仁)'의 싹이요, 부끄러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의(義)'의 싹이요,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싹이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은 '지(智)'의 싹이다. 이러한 마음들은 사람의 네 팔다리가 있는 것과 같으니, 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인간이 아니다. 모두가 지니고 있는 이 싹들을 모두 넓히고 충실하게 만들 줄 안다면, 온 세상을 차지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제 부모 하나 섬기기도 힘이 들 것이다.
맹자 왈, ‘적절한 시기도 지세의 유리함만 같지 못하고, 지세의 유리도 인심이 화합함만 같지 못하니라.’ 전쟁에서 좋은 시기에 공격한다고 못 이기는 수가 있고, 지세가 훌륭할 지라도 그대로 버리고 도망친다면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맹자는 인심의 화합이 제일이라고 이야기 한다.
제나라 왕이 맹자를 불렀으나 맹자가 병을 핑계로 조회에 나가는 것을 거절했다. 그러고는 다음날 대부 동곽씨에게 조문을 가려하자 공손추가 ‘군신간의 도리를 어기는 것이 아니냐.’며 맹자에게 물었다. 맹자는 군주에게는 반드시 앉아서 부를 수 없는 신하가 있는 법이고, 군주가 큰일을 도모할 때는 군주가 직접 그에게 가야한다 하였다. “관중 같은 사람조차도 임금이 함부로 부를 수가 없었는데, 하물며 관중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소?” 하는 맹자의 말에서 자신은 군주가 함부로 부르지 못하는 사람이라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제후들이 자신이 가르칠 만한 사람을 신하로 삼기만 좋아하고, 가르침을 받을 만한 사람을 신하로 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지적했다.
등문공 편
등나라의 문공에게 사람의 본성이 선하므로 자신의 노력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하였으나, 문공은 자신은 성인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다 생각하니 맹자가 이야기하길 ‘성인도 대장부고 나도 대장부인데, 내가 무엇 때문에 성인을 두려워하겠습니까?’라고 하면서 안연의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순임금과 같아질 것이다’ 등의 말을 인용하여 본래 지니고 있는 선의 가능성을 노력을 통해 분발시키고자 하였다.
등나라 문공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대해 물으니 먼저는 백성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생업이 안정된 후에는 상(庠)과 서(序) 학(學)과 교(校)를 세워 백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였다. 어진 정치는 반드시 토지의 경계를 확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하였다. 토지의 경계가 불분명하면 수확에서 얻는 세금 역시 공평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허행에 대해 맹자는 ‘머리를 쓰는 사람이 있고, 몸을 쓰는 사람이 있다. 머리를 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몸을 쓰는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큰 인물이 할 일이 있고, 작은 인물이 할 일이 있는데 천하를 다스리는 일을 어찌 밭갈이와 겸하여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답했다.
제자 진대가 ‘지금 제후를 만나면 그를 왕자 혹은 패자로 만들 수 있는데, 만나지 않는 것은 사소한 지조에 집착하는 행동인 것 같다.’고 말하니 맹자는 사냥터 관리인과 같은 하찮은 직위에 있는 사람도 예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부르면 죽을 각오로 응하지 않았는데, 제후가 합당한 예를 갖추어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먼저 달려갈 수 없다 하였다. 자기 지조를 굽힌 자가 남을 바르게 한 경우는 없다며, 이익 때문에 도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맹자 왈 부귀해져도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빈천한 상황에도 의지가 변함없고 위세와 무력에도 지조를 굽히지 않는 사람을 대장부라고 한다.
제자 팽경이 “뒤 따르는 수레 수십 대와 따르는 사람 수백 명을 거느리고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밥을 얻어먹는 것은 너무한 일이 아닐까요?” 하고 물었다. 선비가 하는 일 없이 얻어먹는 것이 옳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맹자는 왜 인의를 실천하는 사람을 경시하느냐 하였다. 팽경이 다시 ‘백성들의 목적은 먹을 것을 구하려는 것인데, 군자가 도를 실천하는 것도 그 목적이 먹을 것을 구하려는 것인가.’ 하고 다시 물으니 왜 목적을 따지는가. 공로가 있어 먹여줄 만하면 그 사람을 먹여주는 것이다. 하였다.
왕도정치를 실행하려하니 송나라는 작은 나라인데, 제나라와 초나라가 그것을 싫어해서 침공하면 어쩌나 하고 고민하는 만장에게 맹자는 탕왕의 갈 나라 정벌 이야기를 해주며 왕도정치를 실천하지 않아서 그렇지, 만일 왕도정치를 실천하기만 하면 천하의 백성들이 다 머리를 치켜들고 그가 오기를 바라고 군주로 삼고자 할 것이라며, 제나라와 초나라가 강해도 두려울 것이 없다하였다.
<이루 편>
맹자 왈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도구를 사용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함을 말하면서 정치를 하는데 있어서는 선왕의 도를 따르는 것이 지혜라 말하고 있다. 왕에게 어진 마음이 있고 어질다는 평판이 있는데도 백성들이 그 혜택을 입지 못해서 후세의 모범이 될 수 없는 것은 선왕의 도를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갓 선한 마음만 가지고서는 좋은 정치를 할 수 없고, 한갓 법만 갖추어 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저절로 실행되지는 못한다.’고 한다. 성곽이 견고하지 않고 군비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 나라의 재앙이 아니다. 윗사람이 예를 지키지 않고 아랫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법을 어기는 백성이 생겨나 나라를 잃는 것은 금방이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높은 지위에 있어야 한다.
맹자 왈, ‘천하를 얻고 잃음이 어짐과 어질지 못함에 달려있다.’
맹자 왈, ‘어떤 일을 하고서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모두 돌이켜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으니, 모두 ‘천하국가’라고들 한다. 그런데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에 있고 집의 근본은 제 자신에게 있다.”라고 말하며, ‘정치는 어렵지 않다. 큰 집안에 죄를 짓지 않도록 해라. 큰 집안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온 나라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고, 온 나라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온 천하가 바라는 것이니, 그렇게 되면 도덕적 교화가 넘쳐흐를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맹자 왈, ‘천하에 질서가 서면 인격이 모자라는 사람이 인격자의 부림을 받고, 작은 인물이 큰 인물의 부림을 받는다. 천하가 무질서하면, 작은 인물이 큰 인물을 부리고, 약한 자가 강한 자를 부린다. 이 두 사실은 천운이니, 천운에 순종하는 자는 남고, 천운을 거슬리는 자는 멸망한다.’
천하를 얻는 방법은 그 백성을 얻으면 된다하였다. 백성을 얻기 위해서는 그 마음을 얻으면 된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추구해야 할 도가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먼 곳에서 찾고, 해야 할 일이 쉬운 곳에 있는데도 어려운 곳에서 찾는다.
모든 사람이 어버이를 어버이로 섬기고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면 천하가 평온해질 것이다.
우리가 추구 할 도가 어버이를 공경하는 것같이 일상 관계 속에서 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진실함 자체는 하늘의 도이고, 진실함을 추구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지극히 진실한데도 남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경우는 없고, 진실하지 않은데도 남을 감동시키는 경우는 없다.
맹자왈, 사람이 가진 것 중에 눈동자처럼 선량한 것은 없다. 눈동자는 그의 잘못을 감추지 못한다. 마음이 바르면 눈동자도 빛나고,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눈동자도 흐리다.
군자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이유에 대한 물음에 맹자는 부자간의 사이가 멀어지는 것보다 나쁜 일은 없는데, 부모가 도리를 가르쳤는데 아이가 행하지 않아 성을 내면 아이는 ‘도를 가르치려 하지만, 정작 가르치는 분의 행동은 올바른 도리가 아니다’하며 그 사이가 멀어지게 되므로 옛날에는 서로 자식을 바꾸어 가르친 것이라 말했다.
섬기는 일 중에는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지키는 일 중에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어버이를 섬길때는 증자처럼 그 육체를 봉양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뜻을 봉양해야함을 말한다.
맹자 왈, “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폭넓게 배우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까닭은 장차 핵심적인 요점을 말하는 것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학문의 방법에 대한 것으로, 학문의 목적은 단순히 많은 지식을 축적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핵심적인 원리나 법칙을 발견하는데 있다.
<옛 성인들의 행적>
우임금은 맛있는 술을 싫어하고 선한 말을 좋아했다.
탕왕은 중용의 도를 굳게 지켰으며, 출신을 따지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다.
문왕은 백성을 가엾게 여겼고, 도를 바라보고서도 마치 아직 보지 못한 듯이 여겼다.
무왕은 가까운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잊지도 않았다.
맹자는 걱정거리와 근심의 구분을 통해 군자가 지녀야할 자세에 대해 설명한다. 걱정거리는 내면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근심은 밖에서 주어진 것이다. 어떻게 순임금처럼 도덕적 자아를 완성할 것 인가하는 것이 걱정거리이고, 갑작스럽게 닥치는 근심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반성해보면 해결되니 근심으로 여기지 않는다
맹자는 외출했다하면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과 술과 고기를 실컷 먹고 오는 남편이 실상을 알고 보니 제사 지내고 남은 음식을 얻어먹고는 집에 와서 의기양양하게 처첩들에게 으스대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당시 부귀를 구하는 사람들이 이와 같음을 말하고 있다.
<만장 편>
사람은 어려서는 부모를 사모하다가 아름다운 여자를 알게 되면 여자를 사모하고, 처자식이 생기면 처자식을 그리워하는데, 순임금은 죽을 때까지 부모를 사모한 효자이다.
순임금은 부모가 자신을 죽이려하고 이복동생인 상(象)이 순의 것을 가지려했지만, 죽은 줄 알았던 순임금이 살아있자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형님을 생각했습니다.’하는 상에게 나를 도와 이 나라의 신화와 백성들을 다스려라 했다.
상은 날마다 순임금을 죽이려는 것을 자신의 일로 삼았는데 순임금은 천자가 되자 상을 제후로 봉했다. 이에 대해 만장이 ‘순임금이 다른 어질지 못한 자들은 처벌하면서도 상은 유비 지역의 제후로 보낸 것에 대해 유비지역의 백성들은 무슨 죄냐.’ 물었다. 이에 대해 맹자는 어진 사람은 동생을 대함에 노여움을 오래 간직하지 않고 원망을 묵혀 두지 않고 사랑할 뿐이고, 유비지역에 봉한 것은 부유하고 존귀하게 해주려 한 것이다. 그리고 상이 직접 그 지역을 다스릴 수 없었고 순이 관리에게 그 지역을 다스리고 세금을 바치게 했기 때문에 상이 포악하게 굴 수 없었다. 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천하를 물려주었다고 하지만 맹자는 천자라도 천하를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으며, 하늘이 준 것이라고 답했다. 비록, 요임금이 순을 하늘에 추천하기는 했지만, 순이 천하를 물려받을 수 있었던 것은 덕을 지니고 백성들의 신임을 얻어서 하늘의 뜻이 그에게 옮겨갔기 때문이다.
백이는 성인으로서 청령결백한 사람, 이운은 성인으로서 책임을 느끼는 사람, 유하혜는 성인으로서 온화한 사람이다. 공자는 성인으로서 시기에 맞게 하는사람이다. 집대성(集大成)한다는 것은 공자 같은 이를 일컫는 말이다.
만장이 벗을 사귀는 것에 대해 물으니 맹자는 “자신의 나이가 많음을 내세우지 않고, 지위가 높음을 내세우지 않고, 자기 형제 중에 부귀한 사람이 있음을 내세우지 않는다. 벗을 사귄다는 것은 그 사람의 덕을 벗 삼는 것이므로 내세우는 것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맹자가 무도한 제후들과 교제하며 예물을 주고받는 것에 대해 만장이 오늘날 제후들이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취하는 것은 도둑질과 마찬가지 인데, 도둑질한 물건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그들이 예를 갖추어 교제하면 공자 같은 군자도 그것을 받았을 것이란 말은 모순되는 것이 아닌지 물었다. 맹자는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것을 취한다고 해서 그것을 도둑질한다고 해버리는 것은 유사한 사례를 극단화시켜 의(義)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라며, 공자가 사냥 시합을 한 예를 들어 해명했다.
<고자 편>
고자는 ‘사람의 본성은 소용돌이치는 물과 같아서, 동쪽으로 터주면 동쪽으로 터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주면 서쪽으로 흐른다. 사람의 본성 자체에 선함과 불선함의 구분이 없는 것은 물 자체에 동쪽과 서쪽의 구분이 없는 것과 같다.’ 하였다.
맹자는 ‘물 자체에 정말 동서의 구분이 없기는 하지만, 위아래의 구분도 없는가? 사람의 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선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낮은 데로 흘러가지 않는 물은 없다.’고 하며 물결을 막아서 거슬러 올라가도록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물의 본성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힘 때문이다. 사람도 불선한 것을 행하게 된 것은 본성이 밖의 힘에 의해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고자는 사람이 지닌 식욕, 성욕 등이 생리적 본능 독 사람의 본성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사람의 본성 자체는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고자는 ‘사람의 본성은 선함도 없고 선하지 않음도 없다’ 어떤 이는 ‘본성은 선하게 만들 수 있고 선하지 않게도 만들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문왕과 무왕이 왕이 되면 백성들이 선을 좋아하게 되고, 유왕과 여왕이 왕이 되면 백성들이 포악함을 좋아하게 된다.’ 또 어떤 이는 ‘타고난 본성이 선한 사람도 있고, 선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러한 까닭에 요가 임금으로 있는데도 상과 같은 사람이 있고, 고수가 아비인데도 순과 같은 자식이 있었으며, 주가 조카이자 임금인데도 미자 계와 왕자 비간 같은 어진사람이 있기도 했다고 한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니 위의 설은 다 틀린 것이냐.’라고 묻는 공도자의 물음에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바탕대로만 따른다면 선하게 될 수 있다. 선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타고난 재질의 잘못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음으로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라 했다.
본성이 선한데도 현실의 사람들 중에 악한 사람이 있게 된 것은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선한 본성을 지키고 기르는 후천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본래는 아름다웠으나 사람들이 나무를 베고 가축을 방목하니 민둥산이 된 우산 숲을 비유로 들어 말했다.
개나 닭을 잃어버리면 그것을 되찾고자 노력하면서도 자기의 고유한 도덕적 본성은 잃어버리고서도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다고 꼬집으면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라 하였다.
<진심 편>
맹자는 구하려는 대상이 내 자신에게 있는 것을 구하는 것이 유익이라 한다. 이는 높은 지위나 부, 장수 등은 자신이 노력한다고 해서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하늘의 운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도덕적 본성은 자신 안에 있으니 노력해서 구하면 그것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추구하라 하였다.
어떤 것을 행하면서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어떤 것에 익숙해 있으면서도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 일생동안 그것을 따라가면서도 도를 알지 못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다.
맹자는 부끄러워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것이라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음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진정 부끄러워할 것이 없게 될 것’이라 하였다.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은 타고난 능력이고,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타고난 지능이다. 두 세살 난 어린 아이라도 어버이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인과 의를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감상평>
예전에 읽었던 플라톤의 ‘국가’,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같은 대화체로 적혀있는 책이여서 읽으면서 대화의 흐름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던 책이다. 맹자는 ‘이로움’보다 ‘인(仁)’과 ‘의(義)’를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그리고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사람의 팔다리로 비유하면서 인간의 필수 덕목이라고 이야기하고, 새싹에 비유함으로써 계속해서 성장시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인'이란 실상 어버이를 섬기는 그것이고, '의'란 실상 형을 따르는 그것이고, '지'란 이 두가지를 알고 버리지 않는 것이고, '예'란 이 두가지를 알맞게 빛내는 그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추상적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네가지 덕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맹자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맹자가 사람의 ‘선(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부분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고자는 인간은 원래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는 존재라고 이야기하는 반면 맹자는 인간은 원래 선한 존재이고, 선한 능력을 후천적으로 길러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이야기 한다. 어떻게 보면 나도 맹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나는 사람의 ‘양심’이 사람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었던 ‘선(善)’의 정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인디언들이 마음속의 양심을 회전하는 삼각형으로 표현하고, 양심을 속이면 결국 둥글둥글해져 아무리 양심을 속이고 악한 짓을 해도 마음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야기처럼 맹자의 후천적인 노력을 통한 선한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이야기도 이러한 뜻을 가지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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